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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서 판다의 리뷰/🎬영화 봄

[스포주의] '어린 의뢰인' 내가 몰랐던, 모르는 척 했던 진실

by rulone 2019.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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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장규성' 감독님의 영화 '어린 의뢰인'에 관한 스토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아이들의 비명소리와 무언가 부서지는 듯한 둔탁한 소음이 울린다.

"오늘따라 심하네. 가봐야하는거 아냐?"
"남의 집일에 끼어드는 거 아니야."

우리는 왜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걸까.

정말 남의 집 일에 끼어들 필요 없으니까
끼어들어 봤자 좋은 꼴 보긴 힘들테니
괜히 피해를 입을 까봐

이건 '남의 집 일'이라는 핑계로 내 책임을 떠넘기는 거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사실 이러한 일이 일어났을 때, 알고도 모른채한 것은 법적으로 위반되지 않는다. 내 안위를 위해, 내 가족의 안위를 위해. 그저 피했을 뿐이다. 옆집에서 무언가를 때려부시며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려도 우리는 잘못들었으리라, 그도 아니면 알아서 하리라. 대게 알아서 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일이 저절로 해결되리라 내가 아닌 누군가 도와주리라 생각한다. 말하자면 현실 회피인 셈. 그 상황 안에 자신이 있었다면 누군가 듣고 도와주길, 간절히 바랄텐데도 우리는 그 상황을 회피하고 본다. 

위험을 본인이 감당해내야하는 어른도 대처하지 못하고 당하는 일이 부지기수인데, 하물며 아이들은 어른들의 횡포를 어떻게 견뎌내겠느냐는 말이다. 아이들은 어른이 휘두르는 손과 발을 막아낼 힘도, 피할 수 있는 판단력도 부족하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그런 상황에 노출되기 쉽다. 어른은 아이를 보호해야하는 입장임에도 약한 존재라고 괴롭히고 학대하고, 죽이기 까지한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내놓은 통계로는 2010년에 5,600명, 2017년엔 22,300명으로 약 4배가량이 늘어났다. 왜 아동학대가 늘어나는 것일까?

영화 내에서 민준과 다빈의 새엄마로 나오는 지숙은 아이들을 학대하기 이전에 머리를 묶는데, 가해자들의 이중적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그런 장면을 넣었다고 생각한다. 머리를 푼 그녀는 고고하고 무언가 사연이 있는 듯해 보인다. 하지만 머리를 묶은 그녀는 광기에 사로 잡혀 자신의 기분이 풀릴 때까지 자신보다 약자인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학대한다. 주로 그 대상은 여자 아이인 다빈이었는데, 다빈은 동생인 민준이가 지숙에게 맞을 까봐 자신이 나서서 막는다. 고작 열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도 약한 자신의 동생을 지키려고 감싸는데, 3~40년은 더 산 지숙은 그러지 못하는 걸까. 

법정 장면에서 정엽이 이렇게 말한다.

"다빈양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엄마는 어떤 느낌이냐고. 그 어린애가 저한테 그걸 물어봤단 말입니다. 제가 강지숙씨에게 똑같이 그걸 물어보겠습니다. 강지숙 씨에게 엄마는 어떤 느낌입니까?"

그 말한마디에 잠시 멈칫하던 지숙은 '있어봤어야 알지.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라고 말한다. 이 영화에서 다빈과 정엽, 지숙의 공통점은 너무 어릴 때 엄마가 돌아가셨거나 혹은 버려져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인물은 다른 양상을 보였다. 누나의 보살핌을 대신 받고 살아간 정엽과 힘든 상황 속 동생을 지켜야 했던 다빈, 제대로된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지숙. 짐작컨데 지숙은 어릴적 학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가정폭력은 돌고 도는 것이기에.

원래도 예고편을 유심히 보는 편은 아니라 그랬을지 모르지만 어린 아이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경찰에 이끌려 가는 장면을 기억해, 그냥 그런 영화라 생각했다. 그랬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는 말과 함께 영화가 시작 된다. 그리고 가장 첫 장면은 처음 보는 사람은 알 수 없는 장면인데, 바로 정엽이 증거물인 인형을 가지고 법정에 들어가 법정 안에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정엽의 면접 장면. "키티 제노비스 사건"이 언급되며 면접자들에게 38명의 방관자들은 유죄이냐, 무죄이냐를 물었다. 다들 기소할 수는 없지만 유죄라고 답하는 반면 그는 무죄라고 말한다. 그 역시 흔한 방관자와 같은 마인드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민준의 죽음과 다빈의 누명에 관해 듣고서 마음을 바꾼다. 다빈은 마음을 닫고 그 혼자 좌절하는 가운데 친구가 말한다.

"너 뭐하니 지금? 너 좋아하는 법대로 되고 있는거 아니야? 어? 서울.. 네가 좋아하는 서울로 꺼지라고."
"그만해."
"뭘 그만해. 애 죽고나니까 좋은사람 코스프레하고 있는 거 아니야, 지금. 아저씨, 괴로운 척 하지 마시라고 토할 거 같으니까."

그 말은 정곡을 찌른다. 아이가 죽은 사실에 괴로워하는 그였지만, 그동안 모르는 척했던 자신이 과거에 있었다. 다빈이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해 정엽만 찾을 때도 그는 망설이다 찾아가 바빠서 만나 줄 수 없다고 말했던 자신이 과거에 있었다. 그는 아이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햄버거 가게에 앉아 절규한다. 과거의 자신을 자책하며 되돌리려하지만, 아이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우리가 이렇게 방관하고 회피한다면 언젠가 돌려 받을 것이다. 직접 나서지는 못해도 신고정도는 해줄 수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동학대 사건을 일반 사건처럼 해결하려 하지 말고, 그런 피해 조짐이 있을 시에는 가해자와 필히 분리 해놓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 더 이상 사람들이 밑 빠진 독에 물을 붇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할 수 있을 때 해줬으면, 그리고 그 용기에 되려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야 할 때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이 아닌 그 속을 들여다 보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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