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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서 판다의 리뷰/🎬영화 봄

[🎬/감동] 'Everybody's fine.' 아버지의 어깨를 보았다

by rulone 2019.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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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Everybody's fine.'의 관한 스토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께서는 주의해 주세요.

 

청소기를 돌리고 잔디를 깎고 가지를 치고 화분에 물을 주고 장을 보며 '네' 아이를 맞을 준비를 하는 프랭크.
간만에 아이들을 만날 생각에 신이 난 프랭크는 거금을 들여 바비큐 기계를 샀지만 전화벨이 울린다.

"정말 죄송해요. 이번에는 시간을 내지 못할 것 같아요."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임에도 이리도 쓸쓸해 보는 것은 왜일까.
그저 배우가 슬픔을 연기해서?
저말을 들어본 적이 있어서?

저 두 이유보다 타당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저 말을 해본 기억이 있어서.


영화는 미치도록 고요하다. 그리고 의미가 없는 듯 했던 프랭크의 말들이. 어색한 자식들에게 아버지는 말한다.

"실망시키지 말아라."

물론 모든 아버지들의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반적으로 묵뚝뚝하고 다그치기만 하는 아버지를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으로 인해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지만, 당신으로 인해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았습니다."

이 말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아버지들에게 말했을까? 아니, 그렇게까지 깊은 대화로 이어지기란 힘들것이다. 우리는 상처를 받고, 그들은 상처받았으리라 생각하지 못한다. 가장으로서 올바른 길로 이끄는 방식, 자신의 자식이 자신의 헌신으로 성공했으면 하는 바람. 그것이 꼭 옳은 것이 아님에도 그들은 옳다고 말하고 생각한다. 그들이라고 우리를 괴롭히고 싶어 그런 말을 하고 그렇게 행동했겠는가.


 

폐가 좋지 않던 프랭크는 병원에 찾아가, 그곳에 의사로 있는 친구에게 물었다. 내가 아이들을 만나러가도 괜찮겠냐고. 그 친구는 말했다. 네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네가 그저 정원을 다듬는데에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그말을 들은 프랭크는 청개구리처럼 말한다. '비행기는 안된다고 했으니, 비행기를 타지 않고 기차와 버스로만 움직이면 돼.' 프랭크는 가방을 챙기며 열쇠, 카메라, 약을 되뇌인다. 그가 집을 벗어나 문을 잠구는 그 장면에서 그는 트렁크 가방을 한손에 들고 현관 문을 열쇠로 잠군다. 


이 장면에서 익숙히 보여야할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짐을 챙기며 다급하게 '열쇠 챙겼어요?'라고 물어볼 어머니. 그는 8개월 전, 아내를 잃고 넓은 정원을 가진 이 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그는 외로웠고 자식들이 보고 싶었다. 
자신의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나는 일을 해야한다는 이유로 아내에게 자식들과의 소통을 미뤄두었던 그는 그제야 아이들과 이야기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프랭크는 가장 먼저 연락이 되지 않는 데이빗을 찾아갔지만 집이 비어 있었다. 돌아오리라 생각해 그의 집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프랭크는 과거에 자신이 데이빗과 한 대화를 떠올린다.

"커서 뭐가 될래."
"페인터가 되서 내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아니, 넌 화가가 될거야. 페인터가 벽에 그린 그림에는 개가 오줌을 쌀거야. 다시 묻자. 뭐가 되고 싶니."
"화가가 되고 싶어요."
"그럼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지?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지?"

"네. 자랑스러워질게요."

그의 집 근처 갤러리엔 그가 그린 그림이 걸려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밤길을 달리는 자전거. 그 위엔 어린 데이빗이 타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닿기도 전에 사라져버린다. 결국 그는 편지 한통을 남기고 에이미의 집으로 향한다. 

에이미는 아들인 잭이 아파서 오지 못한다고 전화를 해왔지만, 아픈 아이 치고는 잭은 멀쩡히 그를 반겼다. 그는 딸인 에이미와 사위 제프, 손자 잭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왜인지 어색하고 날이 선 분위기. 잭은 제프를 견제하고 있었다. 이상함을 느낀 그였지만,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느냐는 에이미의 말에 하루 이틀쯤 머물겠다는 그의 말을 하게된다. 하지만 에이미는 다들 바쁘고 집에 있지 않을거라 힘들겠다는 말을 전했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었다.'

그녀의 출국일정은 사실이지만, 그녀는 회사의 일로 출국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이동하는 동안 자식들의 통화 내용이 들리며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진 전화선이 비춰진다.


결국 에이미의 집을 떠나온 프랭크. 오케스트라 지휘를 하고 있다는 로버트를 찾아오게 된다. 하지만 로버트는 북을 치고 있었다. 프랭크는 그가 지회를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약간 실망한 기색을 보인다. 프랭크의 그런 기색에 로버트는 그와 흡연을 가지고 다투기 시작한다.

"피지마."
"가끔 기분 전환 겸 피는 거에요. 아버지처럼 하루에 2갑씩 피우는게 아니라 음악인으로서 가끔 피는 거라구요."
"그래. 그럼 펴."
"아뇨? 저는 이제 금연할 거에요.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게 아니라, 제 의지대로요."

약간의 갈등을 보이지만 프랭크는 그에게 미소지어주며 행복하냐고 묻는다. 그에 그는 말한다.

"네. 행복하고 말고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뜨려는데, 저 앞에 서서 미소짓는 로버트가 한 없이 어려보인다. 로버트가 해외로 공연을 가기로 결정되었다고 말하는 통에 그는 로버트와도 오래 있을 수 없었다. 그가 쓸쓸히 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을 멀리서 로버트가 바라본다.

"로지. 아버지 방금 보내드렸어. 아니, 오늘 밤도 내일도 쉬는 날이라 같이 있고 싶었는데, 같이 있으면 말해버릴 것 같아."


그들은 무엇을 숨기고 있는 걸까?
프랭크가 로버트를 떠나 버스를 놓쳐 히치하이킹을 해서 트럭을 모는 여자를 만나는 동안, 그들의 연락은 계속되었다.

"소식 좀 있어?"
"아니. 만나게 해주지도, 소식을 주지도 않아."

그들이 통화를 하며 이야기를 주고 받는 동안 화면은 계속해서 전화선에 멈춰져 있다. 


프랭크의 여정을 계속 되어, 로지에게 닿았다. 로지는 무용수였다. 프랭크는 계속해서 묻는다.

"행복하니?"

그는 로지와 시간을 보내고 비행기를 통해 집으로 돌아가려했다. 집은 너무 멀고, 약도 다 떨어져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로지에게 아무렇지 않는 척 비행기에 오르게 되고, 결국에는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병원에 실려오게 된다. 그는 꿈속 자신의 집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묻는다.

"너희들은 왜 내게 거짓을 고하는 거지? 나는 전부 알고 있었어. 너희들이 어떤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그는 꿈속에서 조차 작은 아이들을 다그치며 왜 너희들은 내게 좋은 일만 알리고 나쁜 일은 알리지 않는 거냐고, 왜 거짓을 고하고 나와 함께하려 하지 않느냐고 묻는데, 그들의 머리 위에 먹구름이 잔뜩 낀다. 그가 데이빗에게 묻는다.

"솔직히 말해. 너 거기 살긴하니?"
"아뇨."
"그럼 넌 어디야. 어디에 가야 만날 수 있지?"
"말해드릴 수 없어요. 만나기 싫어요."
"웃지마. 그렇게 능글맞게 웃지 말라고. 엄마가 말했지. 왜 네겐 그렇게 엄하냐고. 바로 이래서야. 넌 존경심을 가지지 않잖아."

그는 데이빗을 다그치고 나서 한참을 뜸들이며 아이들을 바라보다 말한다.

"그럼 이제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니?"
"모르는 척하세요."
"내가 네 엄마 볼 면목도 없이 어떻게 그러니."
"어머니의 방식으로 하시면 그게 바로 어머니가 듣고 싶어하는 말일 거에요. 모두 잘 지낸다고 전하세요."

그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되고 자신의 병실에 모인 세 아이를 바라본다.

"이제야 모두 모였구나. 그런데 데이빗은?"
"아버지. 데이빗은.. 죽었어요."


영화의 한 장면중 프랭크가 기차를 타고 가면서 마주보는 좌석에 앉은 사람에게 전화선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다.

"저 전화선을 보세요.
우리는 저 전화선으로 대화를 하는데 저 전화선들은 논스탑으로 pvc코팅에 감싸져 있죠.
우리는 저 코팅을 보는 거지 전화선을 보는게 아니에요.
그리고 저것들은 이런 저런 소식을 전하죠. 좋은 소식, 나쁜 소식..."

그리고 이어진 정적.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거 아닐까.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저 전화선을 이용하면 우리는 서로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고 그 대화를 주고 받으며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 수 있다. 그런데 그가 모르는 사이 그의 아이들은 그 전화선을 통해 좋지 않은 소식을 서로 전하고 그에게 그 소식이 닿지 않게 했다. 그들은 그에게 자랑스럽고 행복한, 괜찮은 자식들의 되어야 했다. 하지만 사회는 너무나 척박하고 어려웠고, 자신에게 마저 그 어려움이 발생했다. 그것을 숨기고 괜찮은 자식이 되기 위해 그들은 오늘도 거짓말을 한다. 그것도 저 pvc코팅 안에 숨은 전화선으로 말이다. 그들은 알고있다. 그에게 얼굴을 내보이며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우리가 그에게 얼굴을 보이며 거짓을 고하면 그는 분명 금세 알아 차려 버릴 것이라고.

"어머니의 방식으로 하시면 그게 바로 어머니가 듣고 싶어하는 말일 거에요. 모두 잘 지낸다고 전하세요."

그동안 그의 아내는 그에게 자식들이 괜찮다고, 자랑스러운 일을 하고있다고 전했다. 걱정거리와 그들의 문제를 숨겨가며, 혼자 끙끙 앓으며 말이다. 그녀 또한 그녀의 자식들이 행복하고 괜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제는 현실 속에 같이 있을 수 없게 되어버린 그녀에게 그가 전해야 할 것이다. 모두 잘 지내니 걱정말고 편히 쉬라고. 설상 이게 거짓말이라고 해도 우리는 괜찮다고. 우리가 괜찮은게 당신이 바라는 일이니까.


흔히 우리는 우리의 부모에게 혹은 자식에게 말한다.

"아니야. 괜찮아. 힘들지 않아."

라고 일그러진 얼굴로 이 말을 한다. 과연 이를 착한 거짓말이라고 해도 되는 걸까? 
그들이 걱정하지 않게 해주었으니까?
우리는 조금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게 과연 옳기만 한 일인지.

Everybody's fine은 커크 존스 감독님의 작품으로 이탈리아의 명 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1990년 작품 <모두 잘 지내고 있다오>를 다시 만든 리메이크작이라고 한다. 원작은 보지 못해서 리메이크 되며 어떤 점이 더 강조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건 아버지와 우리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는 것이다.

한번쯤 봐도 좋은 영화. 시간이 아깝지 않은 영화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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