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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서 판다의 리뷰/📖책 펼침

[📖/스포주의] '소년이 온다' 평범하게 살기를 바랐던 그들

by rulone 2019.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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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첫 장의 문장은 ‘비가 올 것 같아.’였다. 6개의 장과 에필로그로 이루어진 이 책을 읽기 전엔 이 책에 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그저 성장 소설 같은 것이라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 첫 문장부터 날씨가 어떠한지 서술되어 있는 것을 보고 불안하다는 감정은 들었지만 그때까지도 아무런 의심 없이 읽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고작 중학생이 왜 시체들을 지키고 있는 건지, 시취로 숨이 막힐 정도인 강당을 둘러보며 마치 무덤덤한 듯이 시체를 둘러보고 있는 그의 모습이 의젓해 보이기도, 냉철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마음 속 한 켠에 죄책감을 지고 있었다. 고작 스물 먹은 진수도, 그날 그곳에 있지 않던 은숙도, 현대에 이 일을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도 죄책감을 지고 있었다.


-인간의 본질.

중학생인 동호는 정대를 찾아다녔고, 상태가 가장 심각한 그 시신이 정대의 누나인 정미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죄책감에 사실을 회피하고 있다. 진수는 어린 아이들이 일렬로 누워 죽어있는 사진을 품고 다니다가 자살했고, 은숙은 초대받은 연극에 나오는 어린 배우에게서 동호의 얼굴을 아른아른 보고서 눈물을 흘린다. 그들의 가슴 속엔 지우지 못할 상처와 분노뿐만 아니라 절대 용서 할 수 없는 자신들이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해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인간이었고 그들을 죽인, 상처 입힌 것들도 모두 ‘인간’이었다. 책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는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참 의아하다. 왜 누구는 죄책감을 가지고 누구는 죄책감을 가지지 못하는 걸까. 아니, 가지지 않는 걸까. 시민군은 총을 들었으나, 자신들을 공격해오는 군인을 상대로 쏘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이 든 총이 자신들을 보호해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군인들은 자신이 든 총으로 그들을 쏘고 심지어는 항복하는 작은 아이들까지 쏴서 죽인다. 그리고 말한다. ‘영화 같지 않냐.’ 살아온 환경과 처한 처지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어째서 그들은 일말의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걸까. 그들의 성격 탓일까? 아니면, 정말 인간의 본질이 잔인한 걸까. 이 독후감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들에게 있어 ‘희생’이란

우리는 5`18의 시민군들이 ‘희생’되었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는 희생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이 말이 너무 어려웠다. 그들의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 한 것이지만, 지금의 우리가 그 권리를 누리게 해준 그들은 우리에게 있어 희생된 것이 맞았다. 네이버 사전에 희생이라는 단어를 적어보니 ‘다른 사람이나 어떤 목적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 재산, 명예, 이익 따위를 바치거나 버림. 또는 그것을 빼앗김.’이라고 쓰여 있었다. 희생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만 과거에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돌아가신 조상을 높여 부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이러한 단어를 싫어했다는 이유를 조금씩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은 목숨을 빼앗길 수도 있는 위기에 놓였고, 그들이 바라는 바를 얻어 낼 수 있어야 했지, 다른 단체의 이익을 위해서나 소실을 막기 위해서‘희생’되어서는 안됐다. 그리고 그들은 결코 희생되고 싶지 않았다. 분명 죽을 각오를 했으나 죽지 않고 누리고 싶을 것이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그들의 ‘희생’이다. 마냥 우리, 현재의 입장에서의 ‘희생’과 그 당시에 그들의 입장에서의 ‘희생’은 뜻은 같지만 가지는 의미와 포부가 달랐다. 그들은 희생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장렬히 불타며 외치다 멎어버린 것이다.


-남겨진 이들이 떠안은 것들

저녁까지는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서 돌아오지 않은 동호를 찾아 나섰던 동호의 엄마는 남은 아들까지 잃을 수 없어 같이 온 동호의 작을 형의 손을 잡고 울며 집으로 돌아온다. 진수와 함께 오랜 기간을 지냈던, 그 당시 스물세살의 교대 복학생이었던 그 사람은 자신을 찾아와 그때의 일을 묻는 사람에게 몇 번이나 ‘그럴 권리가 당신에게 있습니까’라며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되새기는 데에 거부감을 표했다. 이들처럼 살아남은 이들은 멀쩡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전혀 아닐 것이다. 선주는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 고문을 당하고 나서 남자와는 가까이 지내지 않았다. 은숙은 분수대 앞에 모인 주검들 중에 동호가 있던 것 같은 느낌에 분수대에 물이 나오는 것을 고통스럽게 여긴다. 그들 모두가 그날의 고통을 잊지 못하고 살아갔다.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는 것도 충격인 마당에 그들은 처참하게 죽어버린 그들을 마주했다. 지나가다가 본 쥐 시체도 한동안은 기억에 남는데 하물며 같은 사람이 죽은 꼴은 평생을 가고도 남을 것이다. 그런 그들은 쉽게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고, 결혼도 하지 못한 채로 힘겹게 살아갔다. 언젠가 이런 생각을 했었다. 자신과 자신의 사람들을 위해 싸웠다고 하지만, 죽어버린다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닌가. 남겨진 사람들이 받을 상처와 고통은 생각하지 않는 걸까. 그들 나름대로 생각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고 해도 겪어보지 않은 이상 알 수 없는 것이 내 곁에 소중한 사람을 누군가로 인해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슬픔과 분노다. 물론 그 시대가 말 한마디 함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어지럽고 부정한 시대였기에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저 희생하는 경우만을 포함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익숙함의 불편함

여전히 죄책감 속에 사는 동호 엄마의 목차를 보고는 상당히 불편했다. 자신의 막내아들이 위험한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엄마라면 어떻게든 데리고 아들을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곁에는 둘째 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마저 잃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녀는 결국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평생토록 그녀는 그 일을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도청에 남겠다는 걸 억지로라도 데리고 올 걸, 혼자라도 들어가서 데리고 나올 걸. 이해를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표현하는 어머니상하고는 달라 불편했던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분명,‘내가 들어갔다올테니 여기 꼼짝 말고 있어’라며 기어코 엄마는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자주 접하는 장면은 아니라 어색했지만, 현실성 넘쳤다. 자신의 자식이 죽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 앞으로의 삶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돌아가는 엄마는 그 누구보다 큰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모든 소설과 영화 등은 분명 재미를 위해 허구를 집어넣을 수밖에 없지만, 가끔은 이렇게 불편한 점이 드러날 때마다 재미를 위해서라지만 이렇게 현실성 없는 불편한 부분들을 노출시켜 사람들이 이런 허구적인 것을 현실이라고 착각해버리면 안 된다.


-마지막장을 덮으며

책의 모든 목차를 읽고 나서 에필로그가 있는 것을 읽다보니, 이 책 속의 서술을 한 사람이 에필로그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 목차에 동호를‘너’라고 지칭하는 것이 신기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비로소 에필로그에 와서야 그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아마 그 주인공의 이름은‘윤’일 것이다. 누가 지나간 일에, 그것도 피가 튀기고 누군가 죽어간 일에 관심이나 가질까. 아니, 가지더라도 그것은 그냥 ‘그렇구나.’하고 잊어갈 일이었다. 하지만 윤은 자신이 동호처럼 그때 상무관에 가지 못한 것을 자책하고 후회했다.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한다. 저런 일이 있었다니 안타깝다, 존경스럽다, 나쁜 사람들이 있었다라고 한 두 마디 내뱉을 뿐 다시 잊고 삶을 살아갔다. 현대의 삶이 바쁘고 어려운 것을 안다. 그것을 현대에 살고 있는 내가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 일을 통감하고 그때로 돌아가 비통하게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후대에 알려야할 책임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굉장히 오래도록 사람들 기억 속에 남아야한다. 국뽕이라거나, 빨갱이라며 한 쪽을 배척하고 등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고 그저 기억해야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권리를 되찾기 위해 이렇게 노력했고, 그에 대해 특별히 잔인한 몇 사람이 강압적으로 억압하려 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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